
동전, 테이프, 그리고 플로피디스크.
별로 관련 없어 보이는 물건들의 나열이지만, 이것들은 '우연성'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입니다.
단순 비유가 아니라, 20세기 작곡가들은 실제로 동전을 던졌습니다.
앞면이 나오면 이 음, 뒷면이 나오면 저 음...
이렇게 우연을 작곡에 끌어들인 음악을 우연성 음악(aleatoric music)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이런 발상 자체는 훨씬 오래되었는데, 18세기에는 주사위를 굴려 미리 써둔 마디를 이어 붙이는 음악 주사위 놀이(Musikalisches Würfelspiel)가 유행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작곡가들은 원래 본인이 내리던 결정을 동전에게 일부분 맡겼습니다.
그러면 작곡가의 역할도 조금 달라집니다.
결과를 하나씩 써 내려가는 대신, 우연이 작동할 범위를 설계하게 된 것입니다.
다음 장치는 테이프였습니다.
테이프를 잘라 양 끝을 붙이면 같은 소리가 무한히 반복됩니다.
길이가 다른 테이프를 여러 개 동시에 돌리면 각자 다른 주기로 돌아오기 때문에, 겹치는 조합이 계속 달라집니다.
사람의 직접적 개입 없이, 장치가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테이프가 만든 변화는 랜덤과는 다릅니다.
각 루프는 정해진 길이와 속도로 반복되고, 그 조합도 그 규칙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전체의 움직임을 한 번에 파악하기 어려워 우리에게 우연처럼 들릴 뿐입니다.

이제 이 두 방식이 소프트웨어 안에서 만납니다.
작곡가는 무엇을 랜덤에 맡기고, 무엇을 규칙에 따라 움직이게 할지 정합니다.
그 조건 안에서 음악이 계속 만들어지는 방식. 이것이 제너러티브 뮤직(generative music)입니다.
동전과 테이프가 열어둔 자리를 이어받은 것이죠.

오늘날에는 이 일을 하는 장치가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유로랙의 모듈부터 특수한 방정식 기반의 알고리즘까지,
우연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자체가 악기를 고르는 일만큼이나 음악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우연을 만드는 방법은 계속 달라졌지만, 음악이 그 우연에 바란 것은 비슷했습니다.
변화하면서도, 흐트러지지는 않는 것.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음악은 계속 새로워집니다.